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法田面) 법전리(法田里) 음지 마을편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내가 어릴때 가끔 담넘어 들어가서 놀던 곳이지만 지금은 검은 자물쇠로 굳게 잠거 놓았다
정자로서는 단촐한 정면 2칸, 측면 2칸의 정사각형 팔작지붕집으로, 전면은 통칸으로 하여
우물마루를 깔고, 후면에는 온돌방 2칸을 두었으며 사방의 둘레에는 퇴(退)를 둘렀다.
그땐 굉장히 커 보였는데 지금은 너무 적어 보인다
1994년 9월 29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98호로 지정되어 약간의 보수비가 지원되고 있다고,
강석한이 소유하고 있으며
정자의 이름은 《시경(詩經)》 소아(小雅)편에 있는, 형제의 우애를 그린 글에서
취했다는 내용이 정자의 기문(記文)에 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강윤(姜潤), 강완(姜浣), 강한(姜瀚) 삼형제의 우애와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강윤의 증손자이며 철종 때 병조참판을 지낸 강태중(姜泰重)이 1861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마루 쪽에는 모두 널문을 설치했고, 앞쪽에는 툇마루를 덧설치한 뒤 만자(卍字) 난간을 둘렀다.
대청 상부에는 정면 쪽으로 우물반자를 설치했으며 보 방향으로는 퇴량(退樑)을 건너질렀다.
기둥은 전면과 양쪽 측면에 5본(本)만 원주를 사용했다.
2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오른쪽의 예서체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친필이고
왼쪽의 해서체 현판은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병국의 글씨이다.
둥근 기둥에는 후손들이 시구(詩句)를 적은 주련(柱聯)을 붙였고
내부에도 10여 개의 시판(詩板)을 걸어두었다. 정자 뒤편 암벽에 정자 이름이 새겨졌다.
강씨 삼형제는 병자호란의 굴욕적인 화친에 반대하여 봉화로 은거한 강흡(姜洽)의 고손자로,
(내가 어른들에게 예기 듣기로는 열사 하셨다는 예기를 들었는데 역사적으로 증명한거는 보질 못해서
잘 모르겠고 박사공파 17대조로만 알고 있나 사실확인은 안했음)
집안이 3대째 벼슬을 하지 않아 가세가 기울었으나
서로 도우며 학문을 닦아 법전강씨 문중을 경북 북부지역의 명문가로 다시 번창시켰다.
강윤은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한 뒤 정조 때 예조좌랑과 승지를 지냈으며,
강완은 첨지중추부사를, 강한 은 가의대부를 지냈다.
사진은 2004년 여름에 찍은것이고 지붕위 기와에 잡초가 무성한게 좀 아쉽다
앞에 고고히 서 있는 나무는 팽나무 인듯 하다
우리 문중의 문화재이기 때문에 기회 있으면 더 가까이서 상세히 찍어서 보관 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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