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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여행

06/5/5~7 금강산 기행

by 월하소회 2008. 6. 19.

[2006년 5월에 2박3일 일정으로 금강산엘 갔었는데 당시 초등학교 동창모임인

다모임에 있던 글을 일부 편집해서 옮겼으며 남북의 상황은 그때와는 틀림

 

2006년 난 포항에 정착한지가 26년째 이다.
내삶 절반이상을 여기에서 보냈으니 고향이나 마찬가지 이다
포항에는 근 40년을 같이한 친구 6명이 살고있는데 실로 오랜만에 의기투합하여 금강산을 가기로 합의했다.

2008년 지금 금강산 관광은 육로로도,개인 자가용 으로도 가능하다.



강원도 고성은 남측에서는 제일 끝단이다,
포항에서 360Km 떨어저있고 그곳에 위치한 금강산콘도가 현대아산의 남측 베이스 켐프이다.
도착하자마자 직원들이 우리들에게 북측으로 들어가기 위해
준비한 관광객 신분증명서와 여행사증을 나누어 주었고, 우리는 간략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난뒤 우리는 북쪽으로 더 올라가 남측 출입국 수속사무소에 도착하여 국경을 넘어간다는 출경 수속을 하고,
주차장에서 현대아산버스를 타고 드디어 북으로 들어갔다.


DMZ...
봄날 그러나 차가운 들판에 말라서 쓰러진 갈대가 긴장된 남북의 현실을 아는지...
평상의 DMZ는 전혀 긴장이 없는 정말 평화로워 보였지만
난 유신과 10/26, 6/25이후 최대의 내란인 80년의 계엄을 현역으로 직접 몸으로 겪은 세대라서 그런지
그곳을 지나면서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북으로 올라가는 중에 좌측으로 구선봉 (9명의 신선이 와서 놀았다는 낮은 화강암으로 된 바위산)과 낙타봉이 보인다.
불과 3~4분뒤 북측 군사분계선을 지나 북측 출입사무소에 도착되었다.
50년의 긴장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다니....
갈 수 없는 나라에 들어가는 느낌은 새롭기도 하지만 뭔지 어둡고 컴컴한 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북측출입사무소에서 우리들의 입경을 심사하던
북한군의 표정은 우리가 평소 보아왔던, TV에 나오는 그대로 정말 컴컴하다.
입경심사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드디어 북녁땅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길 왼편에는 현대에서 건설중인 철도가 보이고 오른쪽에는 동해바다가 드러났지만 우리가 올라가는 도로는 도로 양측에
높은 철조망을 설치하여 도로 밖으로 이탈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북한의 주민들과는 격리시켜 놓았다.
그러나 철조망 밖으로 저 멀리 북한 주민들이 사는 마을들이 보이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과
아이들이 동네 어구에서 노는 모습들이 보이지만 내민족이라 느끼기엔 뭔가 거리감이 있었다.
북한의 일반 집들은 모두 같은 모양과 크기가 똑같은 가옥 구조를 보여주며 전체 풍광은 60년대의 남한의 농촌 모습이다.
마을길이나 농로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더러더러 보이며 유달이 깃발을 든 군인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새벽 5시에 포항을 출발해서 버스를 달려 이제 저녁 어둑어둑해서야 드디어 온정각에 자리 잡으니
오는데에만 하루종일이 걸린 것이다.
온정각은 금강산을 등산하는 베이스 켐프로서 현대에서 공연장도 지어놓고 식당등 편의시설릉 갖추고 있다

또한 거기에는 현지 북한 종업원들과 현대 직원,즉 남북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거기에 근무하는 북한 현지인 들은 상냥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는데


'그곳에는 분명 시장경제가 물들려저 가고 있다는걸 느꼈다...'
더구나 북한직영 포장마차도 운영을 하면서 조개구이,참새구이,파전 녹두전등을 판매하면서
40대 중반의 남자는 좀더 좋은 술을 우리관광객 들에게 팔려하고
예쁘고 날씬한 여직원들이 시종일관 웃으며 시중을 드는모습은 자본의 힘은 여기에 있다는걸 증명이라도 하는듯 했다.
그러나 종료시간은 어김없이 9시이고 통금은 12시였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 포장마차에서 구입한 들쭉술로 밤늦게까지 마셨다ㅋㅋ^^

남남북녀라~
순수 자연 미인을 앞에두고 일잔하니 어찌 기분이 안날소냐...
어떤이가 보낸 시가 생각 안 날수없고...

월하독작(月下獨酌)

                   이백

꽃이 놓인 한동이 술을
친한 이 없이 혼자 마시네

잔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
그림자를 대하니 셋이 되었구나

달은 전부터 술 마실줄 모르고
그림자는 부질없이 흉내만 내는구나.

한동안 달과 그림자 벗해
행락은 모름지기 봄에 맞추었다

내가 노래하니 달은 거닐고
내가 춤을 추니 그림자 어지러워

깨어서는 모두 같이 즐기고
취한 뒤에는 제각기 흩어진다

길이 무정한 놀음 저들과 맺어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길,,,,,,


금강에서의 첫 밤을 자고 난 뒤에 이제 이른 아침, 오늘 드디어 그리운 금강산으로 들어간다.
아침식사는 현대에서 무료로 제공했다
온정각 식당의 뷔폐식 이다....

아니...아니...
내옆으로 낯익은 얼굴이 휙 지나가네
돌아다 봤다.
어..어....
초등학교 동창인 이경자다.
'세상에....'
"경자야~~~~"
경자도 화들짝 놀랐다.

나원참 세상의 인연이란....
경자나 내나 동창회에서 자주 만나니깐 그런곳에서도 대번에 알아보지
둘중 하나라도 안 나오면 그렇게 알아볼수 있을까
바쁜일정이라 서로 금방 돌아섰지만 거참 세상 신비롭기도 하지...

오늘 첫날 관광은 외금강산에서 가장 유명한 계곡인 구룡연코스(신계동계곡-옥류동계곡-구룡동계곡)로
온정리-신계사-옥류동-비봉폭포-구룡폭포-상팔담-신계사로 약 4-5시간이 걸리는 등반코스였다.
외길의 산길을 따라 구룡연계곡으로 들어서자 마자 거대한 화강암의 바위들이 우뚝우뚝 솟아있는 것이 보이고
눈에 보이는 화강암의 거대바위 곳곳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는 문구들이
여기저기 마구 파여져 있으며 곳곳의 명승지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다녀간 곳에는 교지가 내렸다는
신화같은 내용을 적은 표식비들이 있었다.
정부에서 이런 아름다운 곳에 낚서라....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않지만...
이런저런 만감이 교차했다


그냥 코스관광 인지라 난 금강산의 지식도 갖추질 않고 그냥 가라는대로 갈수밖에 없었지만
구룡폭포가 천하제일이라는걸 옛날부터 들어온지라 비를 맞으며 마냥 올라갔다.


두어시간 주마간산 하면서 북한 안내원의 안내를 받으며 올라가니
서서히 구룡동 골짜기를 내리붓는 물소리로 흔들어대는 천둥이 내리치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 유명한 조선 제일의 폭포 구룡폭포가 나타난다.

이름하여 개벽이라 했는가...

 
설악산 대승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의 하나요,
금강산의 제일, 최대의 폭포가 바로 이 구룡폭포다.
폭이 4m요, 길이가 82m나 되어 계곡 건너편의 내가 서있는 관망대의 관폭정까지 물보라가 날려서 옷이 다 젖을 정도이다
그 대단한 굉음은 옆사람과 말을 주고 받을 수 없을 만큼 정말정말  거세게 품으며 소리가 요란했다.
떨어지는 폭포수는 절구통같이 둥그렇게 패인 돌확을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 놓았는데 이 돌확이 '구룡연’이다.
태초이래 몇 천만년이나 세찬 물줄기가 방아를 찧었는지  그 깊이가 13m라 하니 놀랄 따름이다.
금강산 4대사찰 중에서도 가장 큰 절이었다는 고성군 서면의 유점사 자리에서 살다가 53불에게 쫓기어 이곳에 와 살았다는
아홉 마리 용의 전설에서 '구룡연'이란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구룡폭 옆 암벽에는 해강 김규진이 썼다는 예서체의 彌勒佛(미륵불) 세 글자가 두드러지게 보인다.
세 글자의 길이가 19m나 되고, 글씨 폭이 3.6m, 마지막 佛자의 내리 그은 획의 길이만도 13m로서
구룡연의 깊이와 같은 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주변의 암벽에 새겨진 이런저런 글자들은 최치원이나 송시열의 싯귀들이어서
누가 감히 금강산의 일부만 보고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백두대간에서 �혀온 기가 금강산에서 그절정을 이루려나...
그 바위능선들은 기묘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능선으로 실로 신비스러운 경관이다.
구룡폭포 위로는 유명한 상팔담이 펼쳐져 있는데 여덟 개의 담들이 활처럼 굽은 좁은 골짜기 밑에 늘어서 있는 절경지로
세 번째 담에는 선녀의 날개옷을 감추었던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고 했던가?

옥류동 계곡을 탈출하여 구룡연코스 들머리에 있는 북한측에 운영하는 식당 목련관에서는
냉면이 전문이며 선식으로 북한음식과 만두, 녹두부침, 산채나물이 추가로 제공하는데
내가느낀 북한의 목련관이나 옥류관의 냉면맛은 좀 질기다고나 할까,
하여간 내가 느낀맛은 우리나라 일반식당의 냉면 맛보다는 못했다

하산하여 오후 4시반에 북한이 자랑하는 평양 모란봉 교예단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에 임하는 단원들의 인상은 항상 웃으며 만나거나 헤어질 때는 항상 손을 높이 흔들어 인사를 한다.
우리가 북측사람들과 같은 장소에서 만나고 사진 찍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이 시간 뿐이었는데
그들의 공연은 과연 평가대로 최고의 수준이었다.
서커스에다가 체조를 가미한 예술적인 퍼포먼스가 믹스된 형태의 흥겨운 공연이었다.
그네타기로 시작하여 자전거타기, 다리타기 등의 위험한 곡예 마술과 묘기 공연 등
많은 재미있고 감탄할만한 연기가 관객과 호흡을 같이 하는 공던지기 게임도 있는데

내가 공던지는 선수^^로 발탁되는 행운을 잡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잘 가세요!, 통일이 되어서 다시 만나요!"

등의 인사와 통일 기원 음악등은 많은 관객의 박수를 끌어냈다.
모란봉교예공연단은 북한이 자랑하는 최고급 공연단으로 공연배우들은 공훈배우 등의 칭호를 가지고

그 대우는 장관급, 차관급 정도의 대단한 대우를 받는다고 했다.



저녁에는 남한과 마주보고 있는 고성항의 북한측에서 운영하는 횟집에 들려서
순 자연산의 광어회를 한접시 12만원이나 주고 2접시와 평양쐬주로 북한 안내원 여성동무의 접대를 받으며
일잔 때웠다.


[12만원짜리 자연산 광어회 임]
금강산에서 2박 후의 이른 아침도 여전히 비가내리고 있었다.
험준한 산 만물상 가는 날에 이렇게 비가내리고 안개가 끼니 경치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기야 금강산에 한번만 올 것도 아니니 언젠가 다시 기회가 있을테니 그저 날씨 그대로 즐길 생각이다.
경관이 다소 막히더라도 안개낀 금강도 운치가 있지 않겠는가?
심하게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고 올라 가파른 만물상 초입 주차장에 도착한다.
만물상 코스에는 큰 계곡은 없다. 초입에 보이는 계곡이 전부이고 우리는 바위 능선에 붙어 올라간다.
조금 가니 삼선암이 나온다. 3명의 신선이 바위로 변했다는 곳으로 유명한 금강산 귀면암,
즉 귀신의 얼굴을 하고있다는 바로 그곳이다. 가파른 바위 벽을 한참 오르면서 뒤 돌아보니
전방에 막혀있는 바위벽의 윗 능선은 각종 동물모습의 형상들이 나타났다.
맷돼지, 물개, 구렁이, 두꺼비 등 이었는데 절부암이라고 한다나...
이곳에서 부터 신선이 내려와서 놀았다는 천선대까지는 가파른 철계단이 이어져 있다.
땅문을 지나 천선대까지는 사람들이 밀려 많이 지체된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짧고 위험한 코스라는 천선대 코스를 택하여 오르다 보니 드디어 그 유명한 만물상의
기암괴석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길 옆으로는 가파른 낭떠러지라 밑을 쳐다보면 아득하다.
잠시 중간에 우회하면 촛대봉이 있는데 이 주변의 경치는 대단한 장관이다.
주변에 둘러서있는 산들은 아름다운 동양화의 병풍 그 자체이다.
아슬아슬한 철계단으로 올라 선녀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천선대(해발 936m)에 오르자,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이란
이런 만물상의 기암괴석을 보고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날씨가 흐려 완전한
만물상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금강의 묘미는 설악의 웅장함과는 다르게 기암괴석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는 가지각색의 바위 모양의 기묘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날씨는 춥고 여전히 눈은 뿌리지만 천선대에서
내려갈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이제 내려가면 다시 언제 올지 기약도 없어서 그런지 아쉬움이 가득 남는다.

오후 1시 30분 이제는 모든 관광 일정이 끝났다.
북측 초소를 지나 남쪽 땅에 발을 밟으니 지난 2박3일이 꿈속의 날들만 같다.
포항까지는 매우 멀어서 고성에서도 거의 7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졸면서 비몽사몽으로

정신없이 버스는 남으로 달려 후포에서 저녁을 먹고 밤 11시가 넘어서 포항에 도착했다.
집에 돌아와 방에 누우니 마음 그리 편치않고 2박 3일 동안의 일정 속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생각이 난다.

또 목련관 앞에서 먹던 참새구이도 생생하다


내 나라 우리의 땅이지만 갈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것이 비극이며.
철망 바깥의 무표정한 모습의 불행하게 보이는 인민들이 자꾸 눈에 어른거리고

얼굴을 마주치지 않을려고 울타리밑에 돌아서서 앉아계시던 나이드신 어른이 마치

내어릴적 어머니 모습 같아서 안스럽다 못해 나도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듯이 이 상황도 언젠가는 변할 것이다.
글을 마치려니 상팔담 위에서 그 비를 맞으며 우리 친절한 안내원이 눈에 어른거리고
음악 소리가 어디서 나느냐고 묻는 안내원에게 MP3라고 예기하자 MP3가 뭔지 모르던 것도 가슴 아프다
언젠가 다시 찾게될 풍악의 금강을 그리면서 펜을 놓는다.